빌립보서 – 3주차
빌립보서 2:5-30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취함”
마 5:48
48 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온전하게 되십시오.
골 1:27-29
27 하나님은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얼마나 풍성한지를 성도들에게 알리기 원하셨습니다.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28 우리가 그분을 전파하여 온갖 지혜로 각 사람에게 권면하고 각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29 이것을 위하여 나도 내 안에서 능력으로 운행하시는 분의 운행에 따라 수고하며 분투하고 있습니다.
골 3:10-16
10 새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새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에 따라 온전한 지식에 이르도록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11 거기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자와 무할례자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들이니,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인자와 겸허와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으로 입으십시오.
13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불만이 있다면, 서로 짊어지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해 주신 것같이, 여러분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옷으로 입으십시오. 사랑은 온전하게 연결하는 띠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화평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판정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한 몸 안에 부름을 받은 것도 이 화평을 위한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온갖 지혜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하되,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들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고 여러분의 마음에서 은혜로 하나님께 찬송함으로써 거하도록 하십시오.
추가로 읽을 말씀
라이프 스터디 빌립보서 메시지 10-14
2022. 1. 17 ~ 2022. 1. 21
단체로 읽을 말씀: “하나님을 누리는 길” 9장
비립보서 – 3주차
빌립보서 2:5-30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취함”
아침의 누림
빌 2:5-8
5 여러분 안에 이 생각을 품으십시오. 곧 2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각입니다.
6 그분은 본래 1하나님의 모습으로 2존재하셨으나, 하나님과 3동등하신 것을, 붙잡고 놓지 않아야 할 보배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1자신을 비우셔서, 노예의 2모습을 가지시어, 3사람들과 같은 모양이 4되셨으며,
8 1사람의 2형태로 나타나셔서 3자신을 낮추시고 순종하시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심지어 4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마 11:29-30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혼이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30 왜냐하면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엡 4:20, 23
20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23 또한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벧전 2:21-23
21 여러분은 이것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또한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고, 여러분이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주셨습니다.
22 그분은 죄를 범하지 않으셨고, 그분의 입에서는 속임수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3 그분은 욕을 들으셨지만 욕으로 되갚지 않으셨고, 고난을 당하셨지만 위협하지 않으셨으며,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계속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각주에서 발췌
5² 빌립보서 1장의 중점은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 곧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빌 1:20-21), 2장의 중점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 곧 우리의 모형으로 취하는 것이다. 이 본은 우리와 구원의 표준이다(빌2:12).
2장 5절부터 16절까지에는 네 가지 기본 요소인 그리스도(빌 2:5), 구원(빌 2:12), 하나님(빌 2:13), 생명의 말씀(빌 2:16)이 있다.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본을 이루어 내시고, 구원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하신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살며, 그분을 우리의 본으로 취한다.
6¹ 하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존재(히 1:3)의 형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인격의 본질 및 본성과 부합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인격의 본질과 본성을 표현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격의 본질과 본성은 그리스도의 신격을 가리킨다.
6² 혤라어로는 태초부터 존재한다는 의미이므로, 주님께서 영원 과거부터 존재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6³ 주님은 비록 하나님과 동등하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신 것을. 붙잡아서 놓지 않고 보유해야 할 보배로 여기지 않으셨다. 오히려 주님은 (하나님의 본성을 내려놓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습을 내려놓으심으로 자신을 비우셔서 노예의 모습을 가지셨다.
7¹ 즉, 소유하신 것 一 하나님의 모습一을 내려놓으셔서.
7² 2장 6절에 있는 것과 동일한 헬라어 단어이다. 주님은 육체가 되실 때에 그분의 신성한 본성을 바꾸지 않으셨다. 그분은 다만 자신의 외적인 표현을 가장 높은 모습인 하나님의 모습에서 가장 낮은 모습인 노예의 모습으로 바꾸신 것이다. 이것은 본질이 바뀐 것이 아니라 상태가 바뀐 것이다:
7³ 하나님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신격의 내적인 실재를 의미하며, 사람들과 같은 모양은 그분의 인성의 외적인 겉모양을 가리킨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한 사람으로 나타나셨지만,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내적으로 신격의 실재를 가지셨다.
7⁴ 즉, 새로운 상태에 이르셨으며.
8¹ 그리스도께서 사람들과 같은 모양이 되시어 인성의 상태에 이르셨을 때 그분은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셨다.
8² 즉, 외모, 외관. 이것은 2장 7절에 있는 ‘모양’이라는 사상을 더 특별한 의미로 반복한 것이다. 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사람의 형태로 나타나셨다.
8³ 자신을 낮추신 것은 자신을 비우신 것보다 더 전진된 단계였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신 것은 그분께서 자신을 비우신 것을 나타낸다.
8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그리스도께서 낮추신 것의 절정이다. 유대인들이 볼 때는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였다(신 21:22-23). 이방인들이 볼 때 그것은 범죄자들이나 노예들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였다(마 27:16-17, 20-23, 그러므로 그것은 수치스러운 것이었다(히 12:2).
주님은 일곱 단계로 낮아지셨다. (1)자신을 비우심, (2) 노예의 모습을 가지심, (3) 사람들과 같은 모양이 되심, (4)자신을 낮추심 (5) 순종하심, (6) 죽기까지 순종하심, (7)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심.
라이프스터디에서 발췌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객관적인 본으로 삼은 후에 그룔 모방하라고 명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이라는책에서 추천하는 실행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모방하기를 시도하는 것은 원숭이가 사람을 흉내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5절부터 8절까지를 문맥을 벗어나서 읽지 말아야 한다. 이 구절의 문맥을 생각해 볼 때, 그 본은 우리를 실제적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나갈 수 없지만 능력 있는 분이 지금 안으로는 소원을 두고 밖으로는 행하게 하기 위하여 역사하고 계신다. 우리의 책임은 그분과 협력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협력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취하는 것이다.
추가로 읽을 말씀: 빌립보서 라이프 스터디, 10장
빌립보서 – 3주차
빌립보서 2:5-30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취함”
아침의 누림
빌 2:9-11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분을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어,
10 하늘에 있는 이들과 땅에 있는 이들과 땅 아래 있는 이들이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도록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셨습니다.
행 2:36
36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롬 10:9-10, 12-13
9 그대가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받을 것입니다.
10 왜냐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분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시고, 그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하시기 때문입니다.
13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히 1:8-9
8 그러나 아들에 관해서는 “오, 하나님, 주님의 보좌는 영원무궁하며, 주님의 왕국의 왕권은 공평의 왕권입니다.
9 주님은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님의 하나님께서 큰 기쁨의 기름을 주님께 부으시어 주님의 동반자들 위에 두셨습니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골 1:18
18 또한 그분은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그분 자신께서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라이프스터디에서 발췌
빌립보서 2장 9절에서는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라고 했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극도로 낮추셨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가장 높은 정점까지 높이셨다. 이 구절에서 언급하는 이름은 다음 구절에서도 가리키듯이 예수의 이름이다. 주님의 승천한 이후로 이 지구상에는 예수의 이름보다 높은 어떤 이름도 없다. 하나님은 참 사람인 예수를 높여 만유의 주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 주 예수여!” 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옳은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시인해야 한다.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주께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사실상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경배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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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과 11절에서도 바울은 “하늘에 있는 이들과 땅에 있는 이들과 땅 아래 있는 이들이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도록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계속 말한다. 그 이름이란 주 예수의 인격과, 그분의 역사 안에 있는 총체의 표현이다. “이름에”라는 말씀은 “주님의 모든 것의 영역과 요소 안에” 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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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절에서 우리는 우주에 세 층, 즉 하늘과 땅과 땅 아래가 있음을 보게 된다. 하늘에 있는 자들은 천사들이요, 땅에 있는 자들은 사람들이요. 땅 아래 있는 자들은 죽은 자들이다. 그날이 오면 모든 곳에 있는 자들이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 )라 시인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주( )라 시인하는 것이 주님을 부르는 것이다(롬 10:9-10, 12-13). 사람이신 주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해 승천 안에서 주( )가 되셨다(행 2:36). 그러므로 모든 입이 그를 주로 시인해야 한다. 이러한 시인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께”로 번역된 헬라어 낱말은 “결과로 끝난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으로 결과를 맺는다. 이것이 그분의 인격과 역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하심과 그리스도의 행하신 것의 위대한 결말이다(고전 15: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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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시지에서의 내 부담은 우리의 영적 체험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를 높이셨다. 그러나 당신은 그분을 높였는가? 그리스도는 우주 가운데에서는 높임을 받았지만. 당신 안에서 높임을 받았는가? 문제는 그리스도가 당신 안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높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문를 높임에 관해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않고. 이것을 우리의 주관적인 체험에 적용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일상생활의 본으로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을 수 없다.
빌립보서가 그리스도를 체험함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빌립보서에서는 그리스도의 높여짐까지도 우리의 체험과 연관시켜 놓았다. 나는 어렸을 때 그리스도의 높여짐에 관해서 배우기는 했지만 믿는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것은 단지 성경의 교훈뿐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는 그러한 정도의 높은 수준에까지 그리스도를 체험헤아 한다. 그리스도의 높여짐을 단지 객관적인 것으로 여기지 말라. 우리는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하는 것과 같이 높여지신 그리스도도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우주 안에서 그리스도를 높이셨지만, 이제는 우리가 우리 개개인의 우주 안에서. 즉 우리의 일상 생활이나 가정 생활이나 교회 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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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그리스도가 우주 가운데서 객관적으로 높임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주관적이고도 체험적으로 높임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증거는 12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은 5절부터 8절까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을 말하고. 9절부터 11절까지에서 높여진 생명에 관해 말한 후에, 12절에서는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때뿐만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 했다. 여기이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바울이 12절에서 말하는 것이 앞 절에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의 본으로 삼은 것의 결과임을 가리킨다.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이 우리의 체험이 되어야 함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생명이 우리의 체험이 되어야 함도 물론이다. 한면으로는 그리스도의 높여진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를 높이는 섕명이라고도 말힐 수 있다. 우리가 어떤 표현을 쓰든지간에 2장9절부터 11절까지에는 높임의 생명이 있다. 그러한 생활도 역시 우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구원의 일부이다. 12절에서의 구원의 주 요소는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인 그리스도와 높여지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우리가 이루는 구원이다.
추가로 읽을 말씀: 빌립보서 라이프 스터디, 11장
빌립보서 – 3주차
빌립보서 2:5-30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취함”
아침의 누림
빌 2:12-13
12 1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항상 1순종한 것처럼,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1두려움과 떨림으로 여러분 자신의 1구원을 1이루어 내십시오.
13 1왜냐하면 2하나님은 자신의 3기쁨을 위하여 여러분 안에서 4운행하시어, 여러분이 5뜻을 세우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6행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8:4-6, 11
4 이것은 육체를 따라 행하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지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5 육체를 따르는 사람들은 육체의 일들을 생각하지만, 영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영의 일들을 생각합니다.
6 육체에 둔 생각은 죽음이지만, 영에 둔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11 또한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에도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빌 1:19
19 왜냐하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이러한 일이 결국에는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히 13:20-21
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안의 하나님께서
21 온갖 선한 일에서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셔서 그분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분께서 보시기에 매우 기쁜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하시기를 원합니다.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히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각주에서 발췌
12¹ 즉, 앞 절들에서 그리스도를 순종의 본으로 취한 결과로서.
12² 이것은 2장 8절에 있는 “순종하셨습니다” 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다
12³ 두려움은 내적인 동기이며. 떨림은 외적인 태도이다.
12⁴ 이것은 하나님의 유죄 판결이나 불 못에서 벗어난 영원한 구원이 아니라 매일의 구원을 가리키며. 이 구원은 바로 살아 있는 인격이다. 이 매일의 구원은 우리가 살고 체험하고 누린. 바로 그 그리스도를 우리의 외적인 본만 아니라 내적인 본으로 취한 결괴이다. 이 구원의 주된 요소는 십자가에 못 박힌 생명이신 그리스도(빌 2:5-8)와 높아지신 그리스도이다(빌 2:9-11). 이 본이 믿는 이들의 내적인 생명이 될 때. 이 본은 그들의 구원이 된다. 오직 이렇게 될 때 만이 사도의 기쁨이 넘칠 수 있다.
빌립보서 1장에서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말미암지만. 여기에서의 구원은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이 두 경우의 구원은 실지적인 구원이며, 매일의 구원이며, 순간순간의 구원이다. 빌립보서 1장 19절에 있는 계속적인 구원은 어떤 믿는 이가 특정한 상황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특별한 일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하지만 빌립보서 2장 12절에 있는 계속적인 구원은 믿는 이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 직면하는 평범한 7절까지 일들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12⁵ 즉, 완성하십시, 오 궁극적인 결말에 이르게 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으며, 이 구원의 절정은 주 예수님께서 높아지신 것과 같이(빌 2:9), 우리 존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광 안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항상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이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 즉 이 구원을 그 궁극적인 결말에 이르게 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구원을 받았고. 이제는 순종하여 이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 이렇게 순종하는 것에는 우리가 혼 안에서 참되게 하나 되는 것도 포함된다(빌 2:2). 믿음으로 이 구원을 받는 것은 한 번만에 영원히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구원을 완성하는 것은 일생 동안 이루어지는 일이다.
13¹ ‘왜냐하면’은 우리가 항상 순종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본이시며(빌 2:6-11), 우리의 구원의 표준이신(빌 2:12) 주 예수님을 소유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도록, 곧 우리의 구원이 궁극적인 결말에 이를 수 있도록 뜻을 세우게 하실 뿐만 아니라,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운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만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뿐이다.
13²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삼일 하나님―아버지, 아들, 영―이시고, 이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며(고후 13:3상, 5), 우리 안에 계시는 그 영이시다(롬 8:11). 이 셋―그 영, 하나님, 그리스도―은 하나이다.
13³ 즉, 그분의 뜻의 선한 기쁨(엡 1:5). 그분의 뜻의 선한 기쁨은 우리가 그분의 가장 높은 구원의 절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13⁴ 혹은, 활력을 주시어.
13⁵ 뜻을 세우는 것은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행하는 것은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뜻을 세우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서 일어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것이 우리의 영에서 시작되어(비교 빌 4:23), 생각과 감정과 의지까지 확산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로마서 8장과 일치하는데, 로마서 8장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영에서부터 일하기 시작하시어(롬 8:4), 우리의 생각을 통과하시고(롬 8:6), 결국은 우리 육체의 몸 안으로까지 일하시는 것을 본다(롬 8:11).
13⁶ 혹은, 행동하도록. 헬라어로는 이 절에 있는 ‘운행하시어’라는 말과 동일한 단어이다.
추가로 읽을 말씀: 빌립보서 라이프 스터디, 12장
빌립보서 – 3주차
빌립보서 2:5-30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취함”
아침의 누림
빌 2:14-16
14 무슨 일을 하든지 1불평하거나 따지지 마십시오.
15 그러면 여러분은 나무랄 것이 없고 1순결하여, 구부러지고 2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3흠 없는 4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대 가운데서 5세상의 6발광체들로 빛나서
16 1생명의 말씀을 2밝히십시오. 그래서 내가 헛되이 달리지 않았고 헛되이 수고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3날에 4자랑하도록 해 주십시오.
마 5:14-16
14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산 위에 있는 성은 숨겨질 수 없습니다.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둠으로, 그것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춥니다.
16 이와 같이 여러분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시오.
요 8:12
12 예수님께서 다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사람은 결코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벧후 1:3-4
3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영광과 미덕으로 우리를 부르신 그분에 관한 온전한 지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분의 신성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관련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4 하나님은 이 영광과 미덕을 통하여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이 약속들을 통하여 세상에서 정욕으로 부패되는 데서 벗어나,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계 1:20
20 네가 본 내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과 일곱 금등잔대의 비밀은 다음과 같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전달자이고,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이다.
각주에서 발췌
14¹ 불평하는 것은 감정에 속한 것으로서 주로 자매들에게서 나오고, 따지는 것은 생각에 속한 것으로서 주로 형제들에게서 나온다. 두 가지 모두 우리의 구원을 최고도로 완성하는 것을 방해하고, 또 그리스도를 최대한으로 체험하거나 누리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서의 문맥에 따르면, 불평하고 따지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에 생긴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불평하고 따지는 것이 모두 끝난다.
15¹ 혹은, 단순하게, (정치적이지 않고) 꾸밈없이, 순진하게(마 10:16). 이 헬라어 단어의 어근은 ‘혼잡하지 않게’를 의미한다. ‘나무랄 데 없고’는 우리의 외적인 행위를 묘사하며, ‘순결하게’는 우리의 내적인 성품을 묘사한다.
15² 직역하면, 휘어진, 왜곡된.
15³ 흠 없는 것은 순결함과 나무랄 데 없음을 다 합한 특성이다.
15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한 본성이 있다(벧후 1:4).
15⁵ 사탄에게 강탈당한(요일 5:19, 2:15-17) 어둡고 부패한 세상을 가리킨다. ‘세상의’는 ‘우주의’로 번역될 수 있다.
15⁶ 헬라어로는 햇빛을 반사하는 발광체들을 가리킨다. 믿는 이들은 이러한 발광체들로서 세상에서 빛을 발한다. 그들은 자신 속에 어떤 빛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할 수 있는 하늘에 속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스도는 해이시며, 달인 교회와 행성들인 믿는 이들은 생명의 말씀을 밝혀서(빌 2:16) 이분을 반사한다.
16¹ 생명의 말씀은 죽은 문자들로 된 교리와 다르다. 생명의 말씀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호흡(딤후 3:16)이며, 생명을 주시는 영(요 6:63)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이신 주 예수님을 소유하고 있으며(빌 2:6-11),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다(빌 2:1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생명과 신성한 본성을 갖고 있다(빌 2:15).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한 빛을 반사할 자격이 있는 발광체들로서(빌 2:15), 다른 이들에게 밝히고 제시할 생명의 말씀을 갖고 있다. 이 얼마나 신성하고 풍성한 공급인가! 이러한 공급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어 그 절정에 이르게 할 수 있다.
16² 직역하면, 적용하십시오, 제시하십시오, 제공하십시오.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살아 냄으로써 이 말씀을 세상에 적용하고 제시하고 제공하는 것이다.
16³ 이날은 주님께서 두 번째 오시는 날이며, ‘주님의 날’(살전 5:2, 살후 2:2, 고전 1:8, 고후 1:14), 혹은 ‘그날’(딤후 1:18, 4:8)이라고 불린다. 그날에 모든 믿는 이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서 각자에게 주어질 보상을 받을 것이다(고후 5:10, 마 25:19-30).
16⁴ 사도의 기쁨을 넘치게 하는(빌 2:2) 길은 그리스도를 본으로 취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완전히 완성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사도는 그리스도의 날에 믿는 이들을 자랑스럽게 여겨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된다.
라이프스터디에서 발췌
바울은 1장 19졀과 2장 12절에서 모두 구원에 대하여 말한다. 1장 19절에서 바울은 그의 환경이 그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이것은 바울이 심지어 투옥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2장 12절에 있는 구원은 우리를 매일의 불평과 따짐으로부터 구출하는 실제적인 구원이다. 그러나 1장 19절과 2장 12졀에 있는 구원도 모두 원칙에 있어서 동일하다. 두 경우에서의 구원은 모두 실제적이며, 매일의 매 순간적인 구원이다. 1장 19절에 따르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의 넘치는 공급을 통하여 구원을 누렸다. 외견상으로 우리는 2장에서 이 넘치는 공급을 발견할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갖는다. 그러나 그 영의 넘치는 공급과 생명의 말씀은 사실상 하나이다. 바울은 그 영의 넘치는 공급을 통하여 매일의 구윈율 누렸으며,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의하여 매일의 구원을 누릴 수 있다. 더욱이 바울은 그 영의 넘치는 공급을 통하여 구원을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원칙으로 우리가 생명의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매일 구원을 누릴 때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산다. 따라서 실제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는 것, 즉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살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살아 계신 본으로서 그리스도물 취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며, 그의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자연히 그리스도를 살게 될 것이다.
추가로 읽을 말씀: 빌립보서 라이프 스터디, 43장
빌립보서 – 3주차
빌립보서 2:5-30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취함”
아침의 누림
빌 2:17-18
17 그러나 1여러분의 1믿음의 희생 제물과 믿음의 2봉사 위에 내가 3전제로 부어지더라도, 나는 4기뻐하며, 여러분 모두와 5함께 기뻐합니다.
18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민 15:3-5
3 여호와에게 화제물을 바칠 때, 곧 특별한 서원을 하려고 혹은 자원 제물로 바치려고 혹은 정해진 명절에 바치려고 소 떼나 양 떼 가운데서 골라 여호와를 만족시키는 향기가 되도록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바칠 때,
4 여호와에게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은 것을 소제물로 바쳐야 한다.
5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이 어린양 한 마리이면 너희가 준비해야 할 전제물은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이다.
민 28:10
10 이것이 매일의 번제물과 그에 딸린 전제물과는 별도로 안식일마다 바치는 번제물이다.
고후 8:9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부유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후 12:15
15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은 나의 소유물을 더더욱 기쁘게 소비하고, 나 자신까지도 다 소비할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아야 되겠습니까?
살전 2:8
8 여러분을 이처럼 열렬히 사랑하였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여러분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우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딤후 4:6
6 나는 이제 부어지고 있으며, 내가 떠날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롬 15:16
16 이 은혜로 나는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역자, 곧 하나님의 복음에 수고하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각주에서 발췌
17¹ ‘여러분의 믿음의 희생 제물과 믿음의 봉사’라는 것은 빌립보 믿는 이들의 믿음이 하나님께 드려진 희생 제물이었고,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의 봉사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17² 여기에서의 믿음은 모든 것을 포함한 것이며, 믿는 행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 믿음은 기본 제물들이신 그리스도를 포함하여,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체험하고 누린 모든 것의 조성체이며, 그것의 완전한 표현이다. 바울이 사역한 결과로, 믿는 이들은 모든 것을 포함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믿는 이들은 그러한 믿음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렸고, 바울은 그러한 희생 제물 위에 자신이 전제물로 부어지는 것까지도 기뻐했다.
17³ 제사장의 봉사와 같다. 2장 각주 25 비교.
17⁴ 전제물(奠祭物)은 레위기 1장부터 6장까지에 계시된 기본 제물들에 더해진 것이었다(민 15:1-10, 28:7-10). 그 기본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여러 방면을 예표한다. 전제물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누린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하늘에 속한 포도주이신 그리스도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채우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는 포도주가 되게 하신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누림으로써 그런 전제물이 되었다(딤후 4:6).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믿는 이들의 믿음 위에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로 부어질 수 있었다.
17⁵ 이것은 사도가 믿는 이들의 믿음의 희생 제물 위에 자신이 전제물로 피를 흘리는 것을 기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7⁶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다. 사도는 빌립보 사람들의 믿음을 위해 순교당하면서, 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사도가 그들을 축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라이프스터디에서 발췌
2장 16절에서 바울은 헛되이 수고함에 대한 그의 염려를 표명한다. 17절에 의하면, 바울은 빌립보인들 가운데서의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들의 믿음이 그가 자신을 그 위에 관제로 부울 수 있는 기본적인 제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관제로 부은 바 될지라도’ 라는 말은 바울이 자신을 그의 사역을 위해 계속 바쳐진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도’라는 말은 그가 최고도로 바쳐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는 순교를 믿는 이들의 믿음의 제물 위에 자신을 붓는 것으로 여겼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바울은 결국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순교는 자신은 관제로 붓는 것이었다. 수년 동안 바울은 그의 사역을 위해 자신을 계속적으로 제물로 드려왔다. 그러나 그가 순교하기 전까지는 최고로 관제로 부어진 것은 아니었다. 바울은 큰 제물이었지만 자신을 이렇거 붓지는 않았다. 이제 그가 믿는이들의 믿음의 제물과 제사장 봉사 위에 관제로 부은 바 되었을지라도 그는 그들 모두와 함께 기뻐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의 바울의 말은 매우 감동적인 말이다. 나는 이 말씀으로 인해 여러 번 깊이 감동되었음을 간중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그가 항상 그의 사역을 위한 제물이었음을 의미한다. 교회를 봉사하고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사람들은 바울의 제물됨을 배워야 한다. 재물이 없으면 사역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제물로 바쳐질수록 우리의 상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역은 제물의문제이지 보상의 문제는 아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관제로 부어질지라도 기뻐하고 모든 성도들과 함께 기뻐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에 도달해야 한다
2장 17졀과 18절에 의하면 바울과 빌립보 신자들온 서로 기뻐했고 서로서로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다. 바울은 자신이 믿는이들의 믿음의 제물 위메 관제로 부어짐을 기뻐했고, 그들의 믿음 위에 그의 순교시에 그들과 함께 즐거옴을 나누었다. 또한 빌립보 신자들은 바울이 관제가 됨을 기뻐했고. 그들의 믿음을 위해 그의 순교시에 그를 축하하기까지 했다. 사실상 믿는이들이 기삐한 반응도 바울에게 드려진 일종의 축하였다.
우리가 여기에서 보는 두가지 요소 – 믿는이들의 믿음에 관련된 믿는 이들의 요소와 바울이 관제가 된 데 관련된 바울의 요소 – 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의 두 가치 절정을 나타낸다. 믿는이들 편에는 믿음의 절정이 있고. 사도 편에는 순교의 절정이 있다. 이러한 순교는 바울이 자신을 관제로 붓는 것이었다. 주 예수를 최고도로 사랑하고 누린 사람으로서 바울은 결국 그리스도에 익해 하나님께 드려지는 관제로 부은 바된, 하늘에 속한 포도주로 조성되었다. 얼마나 의미심장하고도 놀라운가 !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은 기뼈함으로써 서로서로 반응할 수 있었다. 바울은 믿는이들에 대해 기뻐했고. 믿는이들은 바울에 대해 기뻐했다. 이렇게 서로 기뻐함은 또한 서로 축하함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성공을 인해 서로서로 축하했다. 바울은 믿는이들의 믿음의 성공을 인해 축하했고, 믿는이들은 바울의 성공적인 순교에 대헤 그를 축하했다. 이렇게 서로 기뻐함과 서로 축하함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의 두 가지 절정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과 누림이 이러한 절정에 이를 때까지 우리 모두 계속 전진하자.
추가로 읽을 말씀: 빌립보서 라이프 스터디, 14장
빌립보서 – 3주차
빌립보서 2:5-30
“그리스도를 우리의 본으로 취함”
아침의 누림
빌 2:19-30
19 나는주예수님안에서디모데를속히여러분에게보내었으면합니다. 그러면여러분의사정을알게되어나도1격려를받게될것입니다.
20 나와1같은혼이되어여러분의사정을진심으로돌볼사람이디모데외에는나에게아무도없습니다.
21 왜냐하면모두가자신의일만관심하고, 1그리스도예수님의일은관심하지않기때문입니다.
22 그러나여러분은디모데의1입증된성품을알고있습니다. 자식이아버지에게하듯이, 그는복음을위하여나와함께2섬겼습니다.
23 그러므로나의일이어떻게되어가는지를보아가면서, 디모데를곧보내었으면합니다.
24 그리고나도속히가게되리라고주님안에서확신합니다.
25 그러나에바브로디도를여러분에게보내는것이필요하다고생각합니다. 그는나의1형제요, 동역자요, 전우이고, 여러분의2사도이며, 나의필요를공급하는3사역자입니다.
26 그는여러분모두를그리워하고있으며, 자기가병들었다는소식을여러분이들은줄알고서매우근심했습니다.
27 사실그가병들어거의죽게되었으나하나님께서그에게긍휼을베푸셨고, 그에게뿐만아니라나에게도긍휼을베푸시어내가슬픔위에슬픔을당하지않도록하셨습니다.
28 그러므로내가더욱서둘러그를보내는것은여러분이그를다시보고서기뻐하도록하려는것이며, 나도슬픔을덜려는것입니다.
29 그러므로여러분은주님안에서기쁜마음으로그를영접하고, 또그러한사람들을존중하십시오.
30 그는그리스도의일로거의죽게되었지만, 나에대한여러분의1봉사의부족을채우려고자기2목숨을3돌아보지않았습니다.
빌 1:27
27 오직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 보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의 믿음과 더불어 한 혼으로 함께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듣도록 해 주십시오.
빌 2:2
2 여러분은 같은 것을 생각하고, 같은 사랑을 가지며, 혼 안에서 연결되고, 한 가지 것을 생각하여, 나의 기쁨이 넘치도록 해 주십시오.
롬 12:2
2 여러분은 이 시대를 본받지 마십시오. 오직 여러분은 생각이 새로워짐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선한 뜻,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각주에서 발췌
19¹ 혹은, 충분한 위로를 받게, 충분한 격려를 받게, 시원하게.
20¹ 이 책은 믿는 이들의 혼을 아주 많이 강조한다. 우리는 반드시 인격화된 복음의 믿음과 더불어, 한 혼으로 함께 분투해야 한다(빌 1:27). 우리는 반드시 혼 안에서 연결되고 한 가지 것을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빌 2:2), 같은 혼이 되어 진심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관심해야 한다(빌 2:20-21). 복음의 일과 믿는 이들 가운데 있는 교통과 주님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에서 항상 우리의 혼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혼, 특별히 혼의 주도적인 부분인 생각이 변화되어야 한다(롬 12:2). 이것은 우리가 몸의 생활 안에서 한 혼이 되고, 혼이 연결되고, 같은 혼이 되기 위한 것이다.
21¹ 이 책의 문맥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은 모든 성도들과 함께하는 교회에 관한 일들이다.
22¹ 즉, 입증된 가치, 시험을 통한 증명.
22² 직역하면, 노예로서 섬겼습니다.
25¹ 먼저는 형제였고, 다음으로 동역자였으며, 그다음으로는 전우였다.
25² 위임을 받고 보내어진 사람.
25³ 2장 17절에 있는 ‘봉사’와 동일한 헬라어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헬라어 단어는 사역자를 가리키는데, 사역자의 사역은 제사장의 사역과 같다. 신약의 모든 믿는 이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이다(벧전 2:9, 계 1:6).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방면에서 주님께 봉사하든지, 그것은 다 제사장의 봉사이다(빌 2:17, 30).
29¹ 직역하면, 모든 기쁨으로.
30¹ 2장 각주 17 참조. 2장 각주 25과 3장 각주 3와 비교.
30² 직역하면, 혼. 에바브로디도는 교회들과 성도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30³ 마치 도박꾼이 내기 돈을 거는 것처럼, 위험을 무릅쓰거나 생사에 마음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라이프스터디에서 발췌
빌립보서 2장 19절부터 30절 까지에서 우리는 혼에 관한 두 가지 중요점 볼 수 있다. 첫째는 우리가 혼 안에서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기꺼이 우리의 혼을 희생하거나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성도들로 이루어지는 교회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지려면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디모데는 같은 혼을 가진 사람이었고 에바브로디도는 혼을 돌아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우리 또한 혼 안에서 하나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기꺼이 우리의 혼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동역자둘과 하나되기 위하여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희생할 준비를 해야 한다.
추가로 읽을 말씀: 빌립보서 라이프 스터디, 15장
찬송 #77 (영한동부); #298, #334, #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