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함(1)
– 10 주차
요한복음에 계시된
영광과 영광스럽게 됨
아침의 누림
요 17:1, 22-23
1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드시어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22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온전하게 되어 하나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또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요 13:31-32
31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하나님도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셨습니다.
32 하나님께서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셨다면, 하나님도 자신 안에서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을 곧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골 1:27 하나님은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얼마나 풍성한지를 성도들에게 알리기 원하셨습니다.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갈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이제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생명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생명입니다.
고후 3:18 그러나 우리 모두는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써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이것은 주 영에게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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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 22절과 23절에 있는 하나는 바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고 아들이 믿는 이들에게 주신 아버지의 영광 안에서 믿는 이들이 하나 되는 것이다. 이 영광은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통해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위트니스 리 전집, 1982년, 2권, 요한의 글에 있는 성막과 제물들의 성취, 54장, 669쪽)
오늘의 읽을 말씀
믿는 이들이 하나 되는 것의 첫 번째 근거는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거듭남이고, 두 번째 근거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에서 하나님 자신께로 분별되는 거룩하게 됨이다. … 하나 되는 것의 세 번째 근거는 두 번째 근거보다 더 깊고 더 높다. 그것은 신성한 영광의 나타남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 세상에서 분별된 후에 우리는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우리 안에 영광의 소망으로 계신(골 1:27),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살아야 한다.
우리가 신성한 영광 안에서 하나 되려면, 우리 자신을 버리고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어야 한다(갈 2:20).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도록 자아를 부인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버릴 뿐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을 버려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매우 많은 세상적인 장소들과 세상적인 것들에서 거룩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각 사람은 각자의 의견과 사상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 될 수 있겠는가? 이전에 우리는 갈라져서 여러 세상적인 장소에 가 있었지만, 지금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자아와 관련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광의 생명 곧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아야 한다. … 그럴 때 우리는 이 생명의 영광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이처럼 믿는 이들이 하나되는 것에는 세 가지 근거 또는 단계가 있다. 곧 거듭남, 거룩하게 됨, 영광스럽게 됨이다. 우리가 거듭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고, 거룩한 말씀을 통해 세상에서 분별되어 삼일 하나님께로 오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며, 우리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영광스러운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사는 것이 세 번째 단계이다.
우리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우리는 온전하게 되어 하나가 되는 정도까지 신성한 생명을 체험할 수 있다. 교회생활 안에 있는 형제들이 어느 날 서로 따지고 논쟁하다가 다음 날에는 서로 자백하고 사과한다면, 이것은 그들이 아직 온전하게 되어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온전히 실재화하는 날, 곧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신성한 영광의 생명에 의해 사는 것을 실재화하는 그날이 바로 그들이 온전하게 되어 하나가 되는 날일 것이다. 그날에 우리는 더 이상 논쟁하거나 다투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자아와 의견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온전하게 되어 하나가 될 것이다. … 우리가 이 지점에 도달할 때, 가장 높은 수준의 하나에 이를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신성한 영광에 의해 온전하게 되어 하나 됨으로써 단체적인 방식으로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믿는 이들이 하나 되는 것의 세 번째 방면은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해 신성한 영광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 되는 것의 방면에서, 자신의 자아를 온전히 부인한 믿는 이들은 아버지의 영광을 그들이 온전히 하나 되는 요인으로 누려, 단체적이고도 건축된 방식으로 하나님을 표현한다. … 믿는 이들이 궁극적으로 하나 되는 것은 영원한 생명 안에(아버지의 이름 안에) 있으며, 거룩한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영원토록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는 신성한 영광 안에 있는 것이다.(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개정판, 2권, 메시지 40, 259-264쪽)
추가로 읽을 말씀: 위트니스 리 전집, 1982년, 2권, 요한의 글에 있는 성막과 제물들의 성취, 50-51, 53-54장; 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개정판, 2권, 메시지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