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Fri)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을 함– 2 주차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함

아침의 누림
벧전 5:5-6
5 마찬가지로 청년들은 연장한 이들에게 복종하고, 모두가 서로를 향해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매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이들을 대적하시나,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능의 손 아래에서 겸손해지도록 하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2:2-4
2 여러분은 같은 것을 생각하고, 같은 사랑을 가지며, 혼 안에서 연결되고, 한 가지 것을 생각하여, 나의 기쁨이 넘치도록 해 주십시오.
3 어떤 일도 이기적인 야심으로 하지 말고, 헛된 영광을 위해 하지 말며, 오직 생각을 낮추어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4 각자 자기의 장점만 귀하게 여기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장점도 귀하게 여기십시오.

11:28-30
28 수고하며 짐을 진 사람들이여, 다 나에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안식을 줄 것입니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혼이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30 왜냐하면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장로들을 포함하여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은 겸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동여매야 한다. 베드로전서 1장 13절에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생각의 허리에 띠를 동여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여기 베드로전서 5장 5절에서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전 존재를 동여매야 한다고 말한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서 ‘허리를 동여매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노예의 앞치마’를 의미하는 명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노예가 섬길 때에는 그러한 앞치마로 헐거운 겉옷을 동여매었다. 여기에서 이것은 하나의 비유적인 표현이며, 봉사할때의 미덕인 겸손을 지니는 것을 상징한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직접 수건으로 허리를 동여매시고 그분 자신을 낮추시어, 제자들의 발, 특히 베드로 자신의 발을 씻기신 모습에서 인상을 받아, 이러한 비유적인 표현을 한 것이 분명하다(요 13:4-7).(베드로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33, 306쪽)

오늘의 읽을 말씀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이들을 대적하시나,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말한다. 엄밀히 말해서 이 은혜는 겸손한 믿는 이들 안에서 번성하는 생명공급이신 삼일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 믿는 이들은 이미 초기의 은혜를 받았지만, 이 은혜는 그들이 모든 은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 안에서 번성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벧전 4:10)는 베드로전서 5장에 있는 ‘모든 은혜’처럼 생명의 풍성한 공급으로서, 여러 방면에서 우리 안으로 공급되시는 삼일 하나님이다(고후 13:14, 12:9). 하나님은 겸손한 믿는 이들에게 그분 자신을 은혜이자 생명공급으로 주신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서 ‘겸손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또한 마태복음 11장29절에서처럼 ‘겸허한’을 의미한다. 그 절에서 주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니”라고 말씀하셨다. … 자신을 높이는 대신 우리는 항상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삼일 하나님을 우리의 생명 공급으로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겸손한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을 것이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에서 ‘겸손해지도록 하십시오’라는 말은 수동형인데, 주로 박해 가운데 고난을 받음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겸손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10절).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운행에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의 손 아래에서 기꺼이 겸손해지고 낮아져야 한다. 따라서 베드로는 ‘겸손해지도록 하십시오’라고 말한다.‘겸손해지도록’은 수동적인 표현이지만, ‘하십시오’는 능동적인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며 우리에게 운행하시는 동안, 우리는 앞장서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운행하시도록 해야 한다. 앞장서는 것은 능동적인 것이지만, 그분께서 우리에게 운행하시게 하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손 아래에 기꺼이 머무는 것이다.

하나님은 박해를 사용하시어 우리를 겸손하게 하실 수 있다. …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교만해질 수 있다. 그러나 고난이나 박해는 우리가 겸손해지도록 도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는 실직함으로 인해 겸손해질 수 있다. 어떤 학생은 기대했던 것보다 낮은 성적을 받을 때 겸손해질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가정생활에서 겸손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어떤 형제나 자매의 자녀들이 뛰어나다면 그 부모들은 교만해질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부모에게 문제와 어려움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부모들을 낮아지게 만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젊은 형제의 아버지가 직장에서 매우 높은 지위에 있다면 이 형제는 교만해질 수 있다. …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리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경비원이라고 하자. 그의 아버지가 그러한 낮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알 때, 이것으로 인해 그 젊은 형제는 낮아질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겸손해질 수 없다. 그보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벧전 5:6).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손해지도록 하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운행에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능의 손 아래에서 기꺼이 겸손해지고 낮아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겸손해지도록 하십시오’가 능동-수동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십시오’는 능동적인 표현으로서 우리가 겸손해지는 데 앞장서는 것을 가리키며, ‘겸손해지도록’은 수동적인 표현으로서 우리가 겸손해지도록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비록 하나님의 손은 전능하여 우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분의 손은 여전히 우리의 동역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의 운행은 우리의 동역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지도록 해야 한다.(베드로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33, 307-309쪽)

추가로 읽을 말씀: 베드로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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