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Mon)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수고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고 왕국의 실재와 출현을 가져오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위해 신부가 자신을 준비하도록 함– 9주차

석류의 땅

아침의 누림
8:8
8 그 땅은 밀과 보리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석류가 있는 땅이며, 올리브나무와 그 기름과 꿀이 있는 땅입니다.

2:19
19 머리를 붙들지 않습니다. 온몸은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머리로부터 풍성하게 공급을 받고 함께 짜여, 하나님께서 자라심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1:27-28
27 하나님은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얼마나 풍성한지를 성도들에게 알리기 원하셨습니다.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28 우리가 그분을 전파하여 온갖 지혜로 각 사람에게 권면하고 각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2:9
9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을 지니신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4:3, 13
3 그대의 입술은 진홍색 실 같고 그대의 입은 사랑스러우며 너울 뒤 그대의 뺨은 석류 한쪽 같다오.
13 그대의 새싹들은 가장 좋은 열매가 달린 석류 과수원. 고벨화와 나드

익은 석류를 볼 때, 여러분은 즉시 생명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여러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누리고 또 그분의 부활 능력에 의해, 이 땅에서 온갖 압력과 박해와 고통과 갈등을 겪으신 예수님의 생명을 살아 낸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달콤함과 만족하게 함을 깨달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생명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접촉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움과 매력을 느낄 것이고, 생명의 풍성함이 그들에게 흘러 들어갈 것이다.(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개정 2판, 6장, 94-95쪽)

오늘의 읽을 말씀
우리가 주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기꺼이 그분께 다스림을 받고 제한을 받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생명이 자랄 것이며, 심지어 생명의 풍성도 자랄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누리기 위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 우리가 철학과 윤리와 금욕주의와 규례를 붙잡고 있을 때, 우리는 어둠의 권세 아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이 권세에서 구출하시어 생명과 빛이 충만한 사랑의 왕국 안으로 옮기셨다. 이 왕국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신 그리스도만을 소유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사랑과 빛과 생명을 소유한다.

이 왕국을 보여 주는 예시를 드는 것이,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에대해 충분한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 더 쉬울 것이다. 여러분의 체험을 생각해 보라. 주 예수님께서 참으로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우리는 사랑의 달콤한 느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랑의 느낌은 주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도 포함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 또한 이 신성한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신성한 사랑의 대상인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떤 통제, 혹은 어떤 통치 아래로 들어간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사랑하기 전에는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더 많이 말할수록 우리의 자유는 줄어들었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는 이러한 통치와 제한을 감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어떤 내적인 제한도 느끼지 못한 채 사람들을 모질게 대할 수도 있었고, 세상적인 오락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이제 그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왔다. 이러한 통치는 가혹하지 않다. 오히려 이 통치는 달콤하고 유쾌하다. …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유쾌한 방식으로 통치하신 결과, 우리는 헛된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분을 언짢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의 달콤함 가운데 우리는 극도로 통치와 제한을 받는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의 의미는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말미암아 살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다면, 우리는 우리 중의 많은 사람이 아직도 우리의 자아가 만든 어떤 형태의 통제, 즉 자아가 정하고 집행하는 어떤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통제는 어둠의 권세이다. 이러한 권세 아래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읽어도 아무 빛도 받지 못하고, 기도할 때 마땅히 떠오르는 말도 없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 즉 우리의 타고난 생각과 감정과 선호와 행실에서 구출해 주셨지만,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타고난 존재의 어떤 방면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둠의 권세 아래 붙잡혀 있게 된다. 우리는 사실상 어둠의 권세와 통제를 받으며 실지적으로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의 몫이신 그리스도를 거의 누리지 못한다.

우리가 부활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신 아들로 말미암아 살 때, 우리는 그분의 왕국 안에 살며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그분을 누린다.(골로새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4, 45-47쪽)

추가로 읽을 말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개정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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