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을 함– 5 주차
베드로의 서신서들에 나타난 은혜
아침의 누림
벧전 2:19-21
19 누구든지 하나님에 대한 의식 때문에, 부당한 고난을 당하여도 슬픔을 참는다면, 그것은 은혜입니다.
20 여러분이 죄를 짓다가 매를 맞고 견딘다면, 그것이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고 견딘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은혜입니다.
21 여러분은 이것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또한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고, 여러분이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주셨습니다.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받았으니 은혜를 지닙시다. 은혜를 통하여 우리가 경건함과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겨야 합니다.
행 11:23 그가 도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머물러 있으라고 격려하였다.
요 7:38-39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서 말한 대로 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39 이것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받을 그 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
엡 1:14 이 성령은 하나님께서 사신 소유가 구속에 이를 때까지 우리 유업의 보증이 되시어, 그분의 영광이 찬송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후 4:7 그러나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탁월한 능력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고후 13:1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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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의식 때문에 부당한 고통, 곧 불의한 대접을 받아도 기꺼이 슬픔을 참는다면, 그것은 은혜이다. 베드로전서 2장 19절에서 ‘은혜’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카리스(charis)이며, 여기에서는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의 동기와 우리 생활에 나타난 이 신성한 생명의 표현을 가리킨다. 그러한 표현은 우리의 행동 가운데서 하나님과 사람이 보기에 은혜롭고 기쁘게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된다(벧전 2:20).(베드로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9, 180-181쪽)
오늘의 읽을 말씀
‘하나님에 대한 의식’(벧전 2:19)은 또한 ‘하나님에 대한 양심’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갖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통 안에 살고 있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선하고 순수한 양심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베드로전서 2장 19절의 문맥에 따르면, 부당한 고난은 틀림없이 믿지 않는 주인들이 가한 학대일 것이다. 그 주인들은 믿는 하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나타냈기 때문에, 그들을 반대하고 박해했다(벧전 3:14-18, 4:12-16).
베드로전서 2장 19절과 20절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일상생활의 행실에 대해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행실의 문제이다. 우리 안에 신성한 생명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분명히 우리의 가정생활은 매우 힘들 것이다. 특별히 인척들과 관련하여, 그중에서도 시어머니와 장모와 관련하여 그러할 것이다. … 남편은 장모로 인해 그리고 아내는 시어머니로 인해 힘겨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결혼한 부부는 시어머니나 장모와 함께 살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여기에서의 요점은 우리에게 신성한 생명이 없다면 아무리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지라도 결혼 생활에서 문제에 직면하리라는 것이다. … 남편과 아내가 서로 아무리 비슷하더라도, 성질과 기질과 습관과 성장 배경과 이해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남편에게는 여러 일들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있고,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내에게 자신의 습관과 기질이 있듯이, 남편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려움을 겪는 데는 골치 아픈 다섯 가지 요인, 즉 성질과 기질과 습관과 성장 배경과 사고방식이 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은 심지어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매우 많이 사랑하고 그들이 고상하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할 것이다. 최소한 그들은 가끔은 그러한 상황을 참을 수 없을 것이며 서로 말다툼할 것이다. 그럴 때 시어머니나 장모가 찾아온다면 그녀는 그 상황이 완전히 불쾌하고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시어머니나 장모는 품위가 떨어지는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기조차 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에게 신성한 생명이 있고, 그들이 이 생명에 따라 산다고 가정해 보자. 성질과 기질과 습관과 성장 배경과 이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은혜는 남편과 아내의 내적 동기가 된다. 더욱이 이 은혜는 그들의 생활의 표현이 된다. 시어머니나 장모가 두 부부의 생활 방식을 지켜본다면, 그것이 고상하고 유쾌하며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베드로는 … “그것은 은혜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본을 남겨 주셨다고 말한다. 은혜와 본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떤 사람이 한 믿는 이 안에서 은혜이신 삼일 하나님께서 표현되시는 것을 보고 그것이 은혜임을 알아볼 때, 이것은 그 믿는 이가 본이신 그리스도의 복사판이 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시이다. 부당한 고난 가운데서 은혜이신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생산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은혜입니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생산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은혜이신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는 생활 방식은 은혜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생산이다.(베드로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9, 181-182쪽, 메시지 20, 189쪽)
추가로 읽을 말씀: 베드로전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