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함(1)
– 8 주차
장막절이신 그리스도와
생수의 강들로서 믿는 이들에게서
흘러나오시는 그 영이신 그리스도
아침의 누림
레 23:39, 43
39 너희는 그 땅의 소산을 거두어들인 다음,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명절을 지켜야 한다. 그 첫날은 완전히 안식하는 날이고, 여덟째 날도 완전히 안식하는 날이다.
43 이것은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낼 때에 그들을 초막에 거주하게 했던 것을 너희의 후손이 알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다.’ ”
요 7:2
2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장막절이 다가왔다.
요 6:4
4 그 무렵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 16:13-15
13 “그대는 타작마당과 포도즙 틀에서 소산을 거두어들인 다음, 칠 일 동안 장막절을 지내야 합니다.
14 그 명절에는 그대와 그대의 아들딸, 그대의 남종과 여종, 그대의 성문 안에 있는 레위인과 체류자와 고아와 과부가 다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15 그대는 여호와께서 선택하실 곳에서 칠 일 동안 여호와 그대의 하나님께 명절을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그대의 하나님께서 그대의 모든 소산과 그대가 손대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다만 즐거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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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3장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민을 위해 매년의 일곱 명절을 정하셨다고 말한다. 첫 번째 명절은 유월절이었고(5절) 마지막 명절은 장막절이었다 (34절). 유월절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누림의 시작이고 장막절은 그 누림의 완결이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정하신 모든 명절 중 첫 번째 명절로서,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에 대한 우리 누림의 시작이시고 이러한 누림이 우리의 영적 생활의 기원이라는 것을 예표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가 하나의 명절이어야 한다. …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고난받는 생활이지만, 우리가 고난받는 것은 잔치를 더욱 누리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고난은 주님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우리의 고난은 잔치가 된다. 이러한 이유로 시편 23편 5절은 주님께서 우리의 대적들 앞에서 우리에게 상(床)을 차려 주신다고 말한다.‘대적들’은 싸움과 고난을 가리키지만, 주님은 우리의 싸움이 잔치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고난이 상이 되게 하신다.(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10권, 요한복음 결정 연구, 6장, 89쪽)
오늘의 읽을 말씀
유월절의 주된 누림은 유월절 어린양과 무교병이었다. 유월절 어린양에게는 구속을 위한 피가 있고 싸우고 걷기 위해 필요한 고기가 있으며, 무교병은 죄 없는 생활을 상징한다(출 12:5-8). … 피는 이스라엘 자손을 법리적으로 구속했고, 어린양의 고기는 하나님의 선민이 그것을 먹고 유기적으로 보양받고 강화되어 이집트에서 걸어 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어린양이신데, 그분께는 구속을 위한 피가 있으시고, 아울러 우리가 이집트에서 나와 하나님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우리를 강화하고 보양하기 위한 그분 자신도 있으시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또한 무교병이신 그리스도를 먹는데, 이것은 우리가 죄 없는 생명을 살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방면에서 우리는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하며(요 6:54), 또한 우리에게 영과 생명이 되는 그분의 말씀(63절)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도록(58절) 하늘의 떡이신 그분을 먹어야 한다. 요한복음 3장에서 우리는 모든 것 위에 계신 신랑이신 그리스도(29-31절)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어 하나님을 확장하시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을 확장하신 다음에, 그리스도는 그 영을 한량없이 주신다(34절). 그런 다음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36절).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유월절을 먼저 언급하는데, 유월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을 법리적으로 이끌어 오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의 시작이다.
그런 다음 요한은 또한 장막절을 언급하는데, 장막절은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 유기적으로 완결된 것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좋은 땅에서 곡식을 모두 수확한 후에, 하나님께 경배하고 자신이 거둔 것을 누리기 위해 장막절을 지켰다(신16:13-15). 사실상 그들이 함께 모인 것은 섞임에 대한 실지적인 그림이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섞임을 위해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에 가야 했다. 마지막 명절은 수확 후의 가을이었고,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경배와 찬송을 드리면서 좋은 땅에서 수확한 소산물을 누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칭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어떻게 자신들의 조상이 광야에서 방황하는 동안 좋은 땅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기대하며 천막(장막)에서 살았는지를 기억하도록 하시려고 장막절을 정하셨다(레 23:39-43). 모두에게 천막이 있었고, 하나님도 이 천막들 가운데 성막을 갖고 계셨으므로, 장막절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상을 세우실 때 말씀하신 것과 일치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심으로 그분을 기념하라고 하셨다(눅 22:19-20). 장막절이 하나의 기념이었던 것과 같이, 주님의 상도 하나의 기념이다.(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10권, 요한복음 결정 연구, 6장, 89-91쪽)
추가로 읽을 말씀: 위트니스 리 고봉 메시지, 10권, 요한복음 결정 연구, 6장